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넨베르크 전투 (문단 편집) === 전개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annenberg3008.jpg]] 호프만의 계획을 들은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지친 상태인 제2군을 먼저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제1기병사단이 러시아 제1군을 견제하는 사이 제1,3 예비군단이 남하해 제20군단과 합류하여 러시아 제2군을 남쪽에서 포위하고, 동시에 제1, 17군단이 북쪽을 틀어막는 거대 포위망을 은밀히 형성하였다. 8월 28일, 제2군이 포위망으로 들어오자 독일군은 계획대로 제2군을 때려부수기 시작한다. 2군사령관 알렉산드르 삼소노프는 1군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1군 사령관 파벨 폰 렌넨캄프는 이를 가볍게 씹어버린다.[* 하지만, 동프로이센을 석권할 수 있는 전략 거점인 굼비넨을 격전 끝에 점령한 이상 이를 포기하고 물러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때는 후방의 예비대인 10군이 지원을 왔어야 했다. 그러나 10군이 동원조차 마무리 하지 못한 상황인데다 모인 전력조차 민병대 수준의 병사로 구성되었기에 와봤자 인명피해만 늘었을 것이다.]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그 지역 출신의 [[예비군]]들로 구성된 독일 제20군단이 저지하는 동안 양 측면을 포위 후 섬멸한, 이 교과서적인 포위 섬멸전에서 참패한 러시아군은 병력손실 12만 5천명, 야포 손실 500문, 포로 9만 명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삼소노프는 휘하 참모들과 함께 말도 타지 못한 채 도보로 전장을 탈출하다가 상황을 비관하여 자살했다. 전투 진행 도중 러시아 제1군이 언제 개입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루덴도르프는 주력부대였던 기병사단의 이동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마침 정찰기에서 제1군이 움직였다는 보고가 수신되자(사실 이건 오보였다) 기병사단의 기동을 취소하려 한다. 그러나 기병사단 지휘관은 [[KIN|상콤하게 그 지시를 씹어버리고]] 제2군의 포위 섬멸전에 그대로 참여하고, 루덴도르프도 사후에 이 조치를 인정하게 된다. 호프만 중령의 작전계획 수립도 그렇고, 독일군의 특징인 [[임무형 지휘체계]]가 긍정적으로 나타난 예이다. 2군을 휩쓴 독일 제8군은 기수를 렌넨캄프의 러시아 제1군쪽으로 돌렸다. 8군은 숨 돌릴 새 없이 굼비넨에 머무르고 있던 1군을 마수리안 호수로 밀어붙여 다시 한 번 대 포위를 완성하였다. 여기서도 러시아는 12만의 병력과 500문의 대포를 잃었고 6만은 포로가 되면서 처참히 붕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